한만수 시인·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 등 소설 180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 등 6권 출간, '문예창작의 실기론' 등 4권 출간.
한만수 시인·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 등 소설 180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 등 6권 출간, '문예창작의 실기론' 등 4권 출간.

【서울 = 다문화TV뉴스】 한만수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는 이름이 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수많은 잡초들은 이름을 모르면 그냥 풀들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잡초들은 이름을 갖고 있다. 퇴근 무렵 종로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들도 그냥 사람들이지만, 한 명, 한 명 뜯어보면 모두 이름이 있다.

이처럼 모든 존재물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존재 가치를 얻게 된다. 그냥 잡초에서 강아지풀, 민들레, 구절초 등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지나가는 이름을 알게 되면 지나가는 행인이나 군중이 아닌 내 영역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상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냥 ‘그 사람’. ‘대머리’,‘어떤 아저씨’ 라고 불린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일반 백성들이나 천민들은 이름 대신 집안의 막내는 ‘막동’ 얼굴이 예쁘면 ‘곱단이’ 아들 낳기를 원했는데 딸을 낳으면 ‘언년이’, 갓 낳은 아이처럼 덩치가 작으면 ‘간난이’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따라서 집안의 항렬이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정식으로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기본으로 일반백성이나 천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름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부르라고 지어진 호칭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뜻한다. 사람은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이 된다.

따라서 이름이 존재하고, 이름이 불러지고, 이름을 쓰고, 자기 이름을 찾아본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이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름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도 이름과 헤어진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으로도 어떤 사람이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 어떻게 보이느냐도 이름으로 알려진다.

이름이 불러지는 횟수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름이 불러지는 횟수가 많고, 나이가 들수록 이름이 불러지는 횟수는 줄어 든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가족은 물론, 친척이며 동네 사람들도 수시로 이름을 부른다.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하루에 몇 번씩 이름이 불려진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중고등학교 때 보다 이름을 부르는 횟수가 눈에 띄도록 줄어 든다.

이윽고, 사회에 진출하면 특수한 관계가 아니면 이름은 생략이 되고, 사회적 지위나 단체의 성격에 따라 호칭이 불러지는 횟수가 늘어 간다. 어느 단체나 공직 사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되면 박 주무관으로부터 시작해서, 김 팀장, 오 과장 등의 호칭으로 불려진다. 현직에서 은퇴를 하면 그냥 어르신, 노인네, 할아버지, 할머니 등으로 불러지다가 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고, 묘지 앞에 이름 석 자가 비바람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이름은 이처럼 내 것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가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상은 내 이름으로 인해 존재한다. 내 이름이 사라지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내 이름이고, 세상과 결별하는 것도 결국은 내 이름이다. 이름은 자신의 존재가치인데도 정작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는 점은 타인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덥다고 해서 옷을 훌렁 벗고 다닐 수가 없고, 배고프다고 해서 짐승처럼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서 음식을 빼앗아 먹을 수는 없다. 부모의 슬하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고, 형제들의 눈치를 살피고, 사회에 나가면 사회 구성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겨울이 되면 오리털 재킷을 많이 입고 다닌다. 한 벌에 백만 원이 넘는 수입브랜드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당근이나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구입한 몇 만 원짜리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에 가면 몇 만원만 줘도 충분히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재킷이 있는데도 브랜드 중고를 사는 이유는 타인을 의식한 결과다.

유명 탤런트나 배우들은 동대문 의류 시장에서 산 몇만 원짜리 옷을 입어도 명품으로 보인다. 안 좋은 소문이 돌거나 사악한 정치인이 입은 몇백만 원짜리 브랜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가난이 비참한 것은 아니다. 실로 비참한 것은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단정해 버리는 좌절이 비참한 것이다. 세상은 내 이름으로 인해 존재한다. 어렵고 힘들 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위로하며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 보자. 그러면 현재의 절망으로부터 헤어날 방법이 생길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김동훈!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일년 365일 하루에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 줘도 하루하루가 기름지고 행복해 질 것이다. (다음 회는 ‘내 안의 유토피아’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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