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시인·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 등 소설 180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 등 6권 출간, '문예창작의 실기론' 등 4권 출간.
한만수 시인·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대하장편소설 '금강'(전15권) 등 소설 180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 등 6권 출간, '문예창작의 실기론' 등 4권 출간.

【서울 = 다문화TV뉴스】한만수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언뜻 들으면 잘못 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 는 관용어로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잘못 관용어다. 원래의 뜻은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 라는 말에서 앞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예전에는 금보다 은이 비쌌다. 당연히 말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말을 하는 쪽이 낫다.는 말이었었다.

서양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서로를 몹시 사랑하는 노부부 이야기가 있다. 노부부는 몹시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식사는 늘 한 조각의 빵을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그들은 결혼 50주년에 금혼식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해 져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부부는 무척 행복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부부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하루 종일 손님을 맞이하느라 지쳐있었으므로 그들은 간단하게 구운 빵 한 조각에 잼을 발라 나누어 먹기로 했다.

"빵 한 조각을 앞에 두고 마주앉으니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는 구려"

할아버지 지난 50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할머니에게 노릇노릇하고 고소한 빵의 껍질을 잘라 내밀었다.

"역시 당신은 오늘 같은 날에도 부드러운 빵 속은 당신이 먹고 내게는 딱딱한 빵 껍질을 주는군요. 50년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난 날마다 당신이 내미는 빵 껍질을 먹어 왔어요. 그동안 당신에게 늘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섭섭한 마음을 애써 참아왔어요. 하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도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당신은 내 기분이 어떨지 조금도 헤아릴 줄 모르는군요.”

할머니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몹시 화를 냈다. 참다 못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할아버지는 몹시 놀란 듯 한동안 머뭇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 입을 열었다.

“휴! 난, 부인을 위한 일편단신 사랑밖에는...당신이 진작 이야기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난 몰랐소. 하지만 여보, 바삭바삭한 빵 껍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소!”

할아버지는 50년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맛있는 부분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이다.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교훈이 될만한 이야기이다.

앞의 이야기처럼 모든 오해는 침묵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겠지, 내 눈빛을 보면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 듣겠지.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고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의 불꽃이 피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 상대방을 내 목숨처럼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20년만에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 경우가 있다. 물건을 사러 가서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대판 싸운 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기도 한다. 친구 소개팅하러 가는데 따라 나갔다가 부부의 연을 맺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준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었으면, 부부가 되기 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하고, 더 많은 배려와 이해를 해 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잉꼬부부’ 소리를 듣게 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내는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초저녁부터 정성을 들였는데, 남편은 친구를 만나 아내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고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케이스는 많다.

아내도 일요일이니까 남편도 이해 해 줄 것으로 믿고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거르기도 한다. 이때 ‘나는 당신이 이해를 해 줄 줄 알았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말을 해 주겠다.’ 라는 말 한마디면 서운했던 일은 없던 일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SMS의 발달로 점점 말을 할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 예전 같으면 전화로나마 목소리를 주고 받았는데 요즈음은 핸드폰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어느 때는 하루 10마디도 주고받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목소리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상대방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을 하고 침묵으로 대신한다면 행복은 결코 창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이 돼도, AI가 인간의 심리를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온다 해도 사람마도 고유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겨보는 하루가 되어 보자. (다음 회에는 '인생의 이정표는 세웠나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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