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타이 기원 "피분 송크람 총리, 1941년 말 볶음국수 레시피 보급ㆍ수입식품 판매 금지"

치앙마이에서 파는 새우가 들어간 팟타이 “팟타이 꿍”, 숙주나물과 부추 옆에 양념을 하는 고춧가루, 빻은 땅콩가루, 라임이 있다. 출처 = 테이크어웨이(Takeaway), 위키미디아 커먼즈
치앙마이에서 파는 새우가 들어간 팟타이 “팟타이 꿍”, 숙주나물과 부추 옆에 양념을 하는 고춧가루, 빻은 땅콩가루, 라임이 있다. 출처 = 테이크어웨이(Takeaway), 위키미디아 커먼즈

【서울 = 다문화TV뉴스】 현시내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 베트남을 대표하는 면 요리가 "퍼"라는 데에 이견이 거의 없는 것처럼, 태국을 대표하는 면 음식 중 하나가 "팟타이"라는 데에 반대할 사람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 자체가 "태국(타이)식 볶음(팟)”이라는 뜻이다. 베트남의 "퍼”가 중국인 이민자 음식문화와 프랑스의 식민 통치가 결합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과 같이 팟타이도 화교의 영향과 파시스트 독재 통치의 암울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결합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차이점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등장한 팟타이는 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태국인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새로 창조한 소위 "국민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팟타이를 정통 태국 음식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

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당연히 1932년 6월에 일어난 인민당 혁명일 것이다. 이에 따라 태국의 절대왕정은 몰락하고, 현재까지 입헌군주제 하 의회정치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인민당의 지도자였던 피분 송크람 장군은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에 총리가 되었고, 과거 왕정의 유산과 영향력을 없애는 동시에 타이를 중심으로 한 근대 민족국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바로 1939년부터 1942년까지 발표된 "문화명령”이었다. 1938년에 제일 처음 발표된 명령 1호가 국명을 "시암”에서 "태국”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이어서 새로운 국기와 국가 등을 소개하는 명령이 발표되었다.

이외에도 국산품 애용이 권장되었으며, 표준어 사용, 노출이 심한 전통의상 대신 몸을 가리는 의상이나 제복을 입는 것이 장려되었고, 심지어 하루에 6-8시간 잠을 자고, 건강을 위해 식단을 개선해야 한다는 명령도 추가되었다. 태국이라는 새로운 근대 국가에 어울리는 전통을 피분 정권이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1941년 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홍수와 같은 잇따른 자연재해로 인해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식량, 특히 쌀 부족 문제가 악화되었다.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피분 송크람 총리는 "국수(꾸에이 띠아오)는 몸에 좋기도 하고, 태국 음식의 신맛, 짠맛, 단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다”라며 쌀 대신 면 소비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집에 있는 가사도우미가 개발한 볶음국수 레시피를 보급하기도 했다. 이 볶음국수가 바로 "팟타이”의 기원이다.

피분 송크람 정부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음식 판매상에게 이 레시피를 보급하고, 노점상들이 이 표준화된 레시피에 따라 팟타이를 만들어 팔도록 독려하는 동시에 중국이나 외국에서 들여온 식품들의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반강제적으로 팟타이 소비를 증가시켰다.

피분 송크람의 국수 장려 정책은 단순히 태국의 경제를 보호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모든 태국인들이 근대 민족국가에 걸맞은 이미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공권을 동원하는 데까지 미쳤다.

태국의 대표적인 왕정주의파 작가가 쓴 소설 "4대를 이은 왕국 (The Four Reigns)”이라는 유명한 고전 소설에 보면 한 등장인물이 "난 이젠 이 국수 선전에 완전히 질렸어”라고 불평을 한다.

그러자 그의 동생이 "요즘 정부의 국수 장려 정책을 밀기 위해서 모든 부처의 공무원들에게 국수를 만들어 팔도록 하고 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팟타이는 "국민 음식”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피분 송크람 정권 이전에 태국에 면 요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팟타이가 국민 음식이 되었다고 해서 그 정통성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방콕 길거리에서 파는 매운 팟타이. 출처 = 현시내
방콕 길거리에서 파는 매운 팟타이. 출처 = 현시내

△꾸에이 띠아오 팟타이 : 팟타이의 주재료인 쌀국수의 고향은 중국이다. 영토도 광대하고 인구도 막대한 중국의 음식문화는 전통적으로 춥고 건조한 북부에서 자란 밀과 덥고 습한 남부에서 난 쌀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국수는 원래 북부에서 밀로 주로 만들어져 왔고, 쌀로 국수를 만든 시도를 한 것도 북부 출신 요리사들이다. 밀로 만든 국수처럼 쌀국수도 잘 건조되면 저장기간이 늘어나서 다른 지역으로 유통되기도 쉬웠다.

특히 전 세계에서 쌀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기도 하는 지역인 동남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밀로 만든 국수보다 쌀국수가 훨씬 더 빨리 인기를 얻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쌀국수는 중국 광둥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호판(河粉)의 한 종류로 베트남어로는 "반퍼”라고 부른다.

태국에서는 광둥성에서 유래한 호판을 "꾸에이 띠아오” 혹은 "미"라고 부르는데, 팟타이를 만들 때는 "소면”이라는 뜻의 "꾸에이 띠아오 센렉”이나 짠타부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국수인 "센짠”을 주로 쓴다.

그래서 피분 송크람 정부가 국수 소비 장려 정책을 시행하고, 팟타이 레시피를 보급할 때 처음 쓴 이름이 "태국식으로 볶은 쌀국수”라는 의미의 "꾸에이 띠아오 팟타이"였다. 이 볶음국수가 대중화되면서 "팟타이”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명칭이 어떻게 불리든 간에 주재료인 쌀국수의 고향이 중국인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팟타이가 과연 태국의 전통음식까지는 아니어도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이미 주재료인 국수가 중국에서 기원했고, 그 조리 방법조차도 "차오궈탸오 (炒粿條)”라고 불리는 광둥성 출신 이민자들이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만들어서 판 볶음국수를 따라 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팟타이가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태국 요리를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팟타이가 피분 송크람 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확산된 것은 맞지만 결국은 중국 국수 요리 중 하나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태국에 정착한 화교들이 발명해 낸 요리이기 때문에 태국 국수 요리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팟타이의 정체성, 혹은 정통성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ᅠ

현시내 박사는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동남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위스콘신주립대-화이트와터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2020년 9월부터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국의 냉전 시기 정치사와 국경지대의 소수민족문제, 미국의 냉전 시기 대동남아 정책을 연구해왔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글과 강연으로 나누고 있다.
현시내 박사는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동남아시아 지역학으로 석사,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위스콘신주립대-화이트와터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2020년 9월부터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국의 냉전 시기 정치사와 국경지대의 소수민족문제, 미국의 냉전 시기 대동남아 정책을 연구해왔고,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글과 강연으로 나누고 있다.

△팟타이 자부심 : 18세기부터 눈에 띄게 늘어난 중국인들의 동남아시아로의 이주는 이들의 정착지의 음식문화뿐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전 분야에 변화를 촉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이민자들의 음식들이 "현지화"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로 이주한 광둥성 출신의 호키엔(福建人 복건인)이나 떼오추(潮州人 조주인) 출신 일용직 노동자들이 부수입을 얻기 위해 만들어 팔았던 차오궈탸오는 쌀국수와 돼지고기를 돼지비계 기름인 라드를 써서 볶고, 여기에 중국식 검은색 간장으로 맛을 냈지만, 현지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지역에서 난 새우 페이스트로 간을 하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인들을 위해 소고기나 닭고기를 추가했다.

1700년대에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에 처음 국수 요리를 소개한 이도 중국 상인들이었다. 팟타이가 소개되기 훨씬 이전 시암에 정착한 떼오추인들은 본토에서는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 국수 요리를 즐겨 먹었지만, 열대기후에서 나고 자란 태국인들에게는 국물이 들어간 면 요리가 너무 덥게 느껴져서 오히려 볶음국수와 같은 건면요리가 승산이 있을 거라는 깨달음을 일찍 얻었다고 한다.

또한 태국인들이 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의 조합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러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추가했다.

팟타이는 간장 양념을 기본으로 하는 차오궈탸오와 달리 타마린드 과육으로 만든 주스로 신맛을 내고, 피시소스로 짠맛을 냈으며, 건새우, 마늘이나 샬롯, 팜 설탕 등으로 단맛을, 그리고 빨간색 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낸, 그래서 태국식으로 볶아진 면 요리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태국의 물질 문화를 연구하는 한 학자는 팟타이는 태국인과 중국인 간의 문화적 차별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전략이었고, 결국 성공했다고 주장한다.ᅠ

이화여대 앞 태국 음식점에서 파는 팟타이. 출처 = 현시내
이화여대 앞 태국 음식점에서 파는 팟타이. 출처 = 현시내

지난 20여 년간 태국 정부는 중식, 일식 혹은 인도식으로 대표된 아시아 음식 시장에서 태국 음식문화를 알리고 진출하기 위해 소위 미식 외교(gastrodiplomacy)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2001년 태국 정부는 전 세계에 최소 3,000개의 태국 식당을 세우기 위해 글로벌 타이 음식 주식회사(Global Thai Restaurant Company, Ltd.)를 설립했다.

태국 음식을 태국의 "소프트파워"로 만들기 위해 태국의 음식점들, 보건부, 산업부, 농업부, 태국 국립 식품연구소, 대학교 등은 요리사 훈련에서부터 해외 각국 현지 입맛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요리법 연구, 홍보 전략, 시장조사까지 힘을 합쳤다.

이에 더해 태국 수출입은행은 해외 음식점을 개업하고자 하는 태국 국민에게 대출을 제공했으며, 태국 중소기업 개발 은행은 식품 산업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러한 태국의 공격적인 미식 외교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2001년 글로벌 타이 음식 주식회사가 만들어질 때만 해도 전 세계에 약 5천500여 개의 태국 음식점이 있었는데, 2018년에 1만5천 개를 넘었다. 미국에서만 해도 약 2천 개에서 5천 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팟타이를 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수 있다. 그것이 반강제적으로 선전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건, 중국 음식을 가져다 만든 모방품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지금은 태국인들도, 그리고 태국인이 아닌 이들도 팟타이를 태국 음식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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